안식(眼識) LIGHT SENSE
우리가 ‘보는’ 모든 대상(對象)은 ‘선입견’이란 도구로 만들어진, 그리고 인식되어진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보는’ 행위 이전에 우리는 이미 세계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보는’ 행위의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눈을 통해 세계를 ‘봅니다.’ 철학적으로 ‘본다’는 것은 ‘인식하다’의 다른 표현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식별작용의 주체를 '전오식(前五識), 육식(六,識), 칠식(七識), 팔식(八識)'으로 구분합니다. 또한 식(識)이라는 것을 단계적으로 나누고, 그중 제 1식이 눈으로 보아생기는 것, 곧 안식(眼識, light sense)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아 인식하는 것은 결국 모든 인식의 출발점인 동시에 가장 낮은 단계의 식별법으로 오류가 가장 많은 것이기도 한 셈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본다’는 것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방식인 듯 하지만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눈으로 보는 방식을 재발견하는 도구입니다. 사진은 진실의 순간을 기록하면서 그 속에 거짓의 그림자를 함께 포착해내는 이중성을 가집니다. “사진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오히려 항상 이념적으로 의미를 담고 있는 재현 방식의 틀을 갖는다.” 롤랑 바르트가 지적했듯이, 사진은 결코 그 누구의 이미지가 아니라 항상 타자로서의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인 것이죠.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는 것만 본다’ 는 인지심리학의 근본 규칙과 상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 대상들의 공통점은 여성성(femininity)을 지닌 피사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대상들을 모자이크 형태로 추상화한 것은 대상을 새롭게 보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편견없이 객관화된 미의 기준으로 바라보기, 그것은 대상성의 상실을 통해서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를 통해 얻어진 이미지의 선입견은 대상의 진실을 멀게 할 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이죠. 현상(appearance)속에 도사린 진실의 실 체(實體)와 본질(本質)을 인식하기보다는 그 자신에게서 기원한 환영(illusion)을 신앙처럼 믿는 것입 니다. 현대 사회의 여러 시각적 정보들은 이처럼 믿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의 실체와 본질을 엄정한 의식을 통해 얻어낼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지(image)에 불과한 것입니다.

light sense #1
100 cm x 13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2
100 cm x 13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3
100 cm x 10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4
100 cm x 10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5
100 cm x 10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6
100 cm x 13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7
100 cm x 10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8
100 cm x 13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9
100 cm x 13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light sense #10
100 cm x 130 cm 2010 Pigment print on fineart paper



